동해라는 이름은 한민족의 삶 곳곳에서 2천 년 전부터 불려왔습니다.

BC59년의 일을 기록한 삼국사기 동명왕편에서 최초의 동해 표기가 등장한 이래로 다양한 문헌과 지도 등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동해는 단순한 지리 정보를 담은 지명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에게는 역사의 무대이자 삶의 터전이었으며, 자연재해로부터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숭배와 예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2천년 이상 동해를 따라 흘러온 동해 표기 역사의 다양한 증거를 소개합니다

2000년을 품은 바다, 역사 속 최초의 기록
삼국사기 1145, 한국

역사적으로 동해가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2천년 이상 함께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료입니다. 『三國史記 高句麗 本紀 始祖 東明王』(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시조 동명왕)편에 기록된 내용으로 약 BC59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 중 동해가 등장합니다. 내용을 풀어 이야기하면, 당시 졸본지역에 있던 북부여의 재상 아란불이 북부여의 왕 해부루에게 동해의 가섭원이라는 곳으로 천도할 것을 권유한 내용입니다.

동해가 등장하는 비문 속 기록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탁본 414, 한국

東海賈 國煙三 看煙五 (동해고 국연삼 간연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왕릉을 지키는 사람의 출신지와 호수를 열거한 내용 중에 동해를 지키는 사람은 누구인지 기록하는 과정에서 동해가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왕이 죽어서도 지키고자 했던 바다, 동해
삼국유사 1281, 한국

동해는 한 나라의 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지키고자 했던 역사의 무대였습니다. 동해 바다 한 가운데 자신을 묻어 주면, 자신이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노라 유언을 남긴 신라의 문무왕이었습니다. 문무왕이 묻힌 대왕암은 지금도 동해에 있고, 그의 호국정신이 지금까지도 동해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독도를 품은 이 바다의 이름은 동해
팔도총도 1531, 한국

고지도 중에서 동해라는 지명이 가장 먼저 등장한 지도가 바로 팔도총도입니다. 팔도총도는 조선 초기 1531년 발행된 국토지리서인 신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전국지도입니다. 처음 동해라는 지명이 지도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독도(우산도)가 지도에 등장한 지도로도 가장 오래된 지도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속에도 이 바다는 동쪽 바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지도 1744, 영국

이 지도는 영국의 조지2세 왕실과 프랑스 루이 15세 왕실의 지도학자 보웬(E. Bowen)이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를 지도화해 제작한 것입니다. 이를 비롯해 다양한 지도에서 동해를 EASTERN SEA로도 표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세계인 특히 유럽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이 바다는 동쪽에 위치한 동해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의 안녕과 풍요를 향한 기원의 대상
척주동해비 1661, 한국

동해는 숭배와 칭송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1661년 삼척 부사 허목선생은 동해 풍랑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를 막고자 동해를 예찬하는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비석 뒷면에 글귀를 담아 삼척 앞 바다의 만리도에 세웠습니다. 이 비석의 이름이 ‘척주 동해비’입니다. 글자 속에 백성의 안녕과 동해를 향한 숭배의 마음이 함께 새겨져 있어,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전해져와 삼척 주민들은 지금도 이사나 개업하는 사람들에게 척주 동해비의 탁본을 선물하곤 합니다.